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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정욱, 김학량, 박병춘, 정재호, 홍지윤, 권기범, 김지혜, 민재영, 임 택, 정용국
시작기간 2007-05-30
종료기간 200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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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화’는 무엇인가

‘한국화’를 말하기 전에

‘동양화’라는 말은 일제가 조선화가와 일본화가가 각기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린 그림을 선전(鮮展)에 하나로 뭉뚱그려 묶고자 만든 것이기에 부적절한 것이었으며 또한 무엇인가로 대체해야할 것이었는데, 그것이 한국화였다. 그러한 ‘한국화’라는 말에는 이런 의미와 더불어, 개발독재 시절의 모토였던(근자에 회자되는 글로벌화가 아닌) ‘국제화’ 대세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국적인 미의식이나 자의식이 보다 강하게 담긴 것이라는 ‘믿음’도, 그리고 그런 믿음이 가져다줄 현실적 이익을 기대하는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도 모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태생적 한계는 애초부터 지적되었던 바, 또다시 용어의 문제는 남아 있다. 한국화는 무엇인가?, Korean Painting은 ‘한국회화’인가 ‘한국화’인가? 소위 글로벌시대에도 여전히 ‘Korean Painting’이라는 영문이 박힌 책과 도록에 담긴 것은 ‘한국회화(우리나라 화가가 그린 그림)’이기도 하고 전통회화 양식을 전공한 화가들만의 그림을 모으거나 지칭하는 ‘한국화’일 때도 있다.
지필묵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는 이유로 그들의 그림만을 따로 묶어 ‘한국화’라 부른다면 그것은 무의미하고 억지스러운 구분일 뿐이다. 작가의 전공을 일부러 알아보고 나서야 거기에 따라서 서양화인지 한국화인지 굳이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정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아마도 굳이 나누어 줄을 세우고 낙인찍듯 이마에 도장을 찍어 두는 이런저런 제도가 또 이런저런 이유로 득이 되는 사정도 한 몫 하는 때문은 아닐까.
동양화, 서양화, 서(書)라는 세 개의 부문을 두고 일제가 “조선에서의 미술발달을 보비(補裨)하기 위하여” 조선미술전람회를 시작한 것이 1922년, 앞서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를 시작으로 ‘미술’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1911년, 또한 변영로 선생이 《동아일보》에 ‘동양화론’을 기고한 것이 1920년이니까 아직 채 일백년이 되지 못한 일들이다. 더욱이 1950~60년대에 생겨나 7~80년대를 지나면서 자리 잡은 ‘한국화’라는 명칭도 50년에도 못 미치고, 나아가 ‘한국화’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그 이후가 될 터이다.
그렇게 시간을 따지다 보니 한국화의 문제들이 그리 오래된 것이라고 할 것 만도 아닌 듯싶다. 그 사이 한국화는 몇 차례 매듭이 될 만한 결과들을 만드는 가운데 많은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나간 한국화의 시간은 한참 후에 보자면 동시대라는 시간 폭으로 정리될 수도 있는 짧은 움직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던 것이다.
제대로 해본 적은 없어도 한국화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명칭과 갈래 문제가 해결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라고 여겨왔다. 또한 그리 되는 것이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한데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결국 조급해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결국은 때가 되어야 할 일인 모양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화는 그 때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화, 그리고 전통

해방 후 한국화의 지상과제에 하나는 점령기간 동안 배어든 왜색의 탈피였다. 전통회화의 이념과 한국적인 미감의 회복이라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더불어, 본격적으로 상륙하는 서양미술에 보조를 맞춘 소위 현대적 미의식이 담긴 새로운 형식의 창출이 과제의 다른 하나였다. 일본화풍의 배제와 함께 큐비즘, 초현실주의, 미래주의, 그밖에 서양미술의 이러저러한 조형원리들이 위와 같은 목표에 따라 일부 기성작가들의 작업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동양과는 별개로 형성된 서양의 세계관과 미학이 전통회화에 본격적으로 습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 말 앵포르멜 열기로 일어난 비대상회화 바람은 당연히 한국화에도 불어 닥쳤다. 그 당시 그려진 그림들은 이제 지필묵이 작가들에 의해 전래의 이념적 역할을 떠나 그야말로 종이와 붓과 먹이라는 회화의 재료로 ‘환원’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게 된다. 종이와 먹, 필선이 각기 조형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돌을 포함한 이질적인 재료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입체화(立體化)또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바탕, 표현도구, 안료는 물론, 행위 자체나 전통회화에서는 볼 수 없던 물질이 조형의 주제나 대상이 된 것은 서구 회화원리의 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할 것이다.
1970년대 소득과 주거환경의 변화에 힘입어 전통적인 형식에 따른 산수화의 유행이 지난 후, 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화’에서는 다시 한 번 동양정신 계승과 한국적인 회화의 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수묵 실험이 증폭되고, 전통화법의 현대적 부흥을 목표로 채색화 또한 개인적, 집단적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강화된다. ‘한국화’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이 시기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근대 이후 지난 세월 동안 우리에게 ‘의식화된’ 사명감과 부담이 마지막 분출을 보여준 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때를 절정으로 한국화가라면 짊어 져야할 숙명처럼 여겨왔던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의식이 점차 옅어지고 또한 종전의 의미와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는 양상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업이 전통이라는 이념의 복합체와 적어도 일정 부분에서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렇게 새로이 하고 있다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부담일 것이다. 그것은 작가를 위축시키는 제한과 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들은 본인이 자청하지 않는다면 그런 고민으로 정력을 낭비하거나 강박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국화에서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기 이십년 쯤 전에 작업을 화가의 길에 들어선 세대까지는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자신의 작업이 유의미한 무엇이 되며, 화가가 아닌 ‘한국화가’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거의 집단적 믿음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환경이 강요한 소극적인 자의식에 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에서 새로운 이념이나 사유의 등장이 바로 과학에서와 같은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유가 그에 앞선 것을 넘어섬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연다고 할 때, 넘어섬은 앞선 것을 폐기시키는 극복이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유 틀의 전환이며 관점의 전환에 의한 외연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동서양 모두에서 대조적인 회화관이나 사조가 상호 대립적으로 부침하는 모양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 도정에 있는 것이 한국화임을 생각해본다면 한국화가 목표했던 전통의 현대화나 한국적 회화의 수립이라는 과제는 애초부터, 현재의 눈으로 전통을 바라보기 보는 사고의 전환보다는, 붕괴된 전통을 회복하고 나아가 극복하여 보다 발전한 무엇으로 가시화해야 한다는 강박과 소극적인 자의식에서 비롯했던 것은 아닐까.

다시 한국화를 생각하기

‘새로운 밀레니엄’을 경계로 우리 미술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겨났다.(그러고 보니까 ‘뉴밀레니엄’이라고 떠들썩하던 때를 돌아보면, 정말 그것이 어떤 점에서건 유의미한 계기였는지 어땠는지, 무언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그래도 재정적으로나 인력 면에서나 여유가 좀 있는 미술관들은 유행 따라 사사로이 제각각 득만 좆지 말고 이제 그런 걸 좀 따져봐야 그나마 제 몫을 좀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새천년이 아니라도 한 10년 쯤 지나면 정리도 해보고 ‘전망’이라고 해보기도 하는 곳이 미술관 아니던가…)
대세라고 생각했던 미디어아트는 이전만 못하고, 더불어, ‘그리기’를 대신할 듯 하던 ‘만들기’도 많이 잦아들었다. 따라서 그리기는 그 영예를 상당부분 회복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와는 다른 감성을 가진 젊은 작가들은 대거 진출하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주요한 트렌드로 부상하였고 이들을 좆다보니 자연 그 이전 세대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다. 시장은 계속 확대되는 가운데 경매의 활황이 그 시장구조도 이전과는 크게 변모시켜 놓았다. 또한 그사이 중국을 필두로 일본이 현대미술의 대명사가 된 듯하고 한편으로는 미술에 대한 글 속에서 프랑스 이론가들의 이름을 볼 기회도 상당히 줄어든 듯하다. 이러한 변화들은 ‘한국화’에 국한하더라도 대부분 그대로 적용된다.

2000년은 대체로 현재 30대와 40대 전반 연령의 작가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보이게 되는 시점이고, 1980~90년대는 현재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는 작가들이 부상하던 시기이다. 이들 사이에는 한 세대라고 하기에도 짧은 연령차 밖에는 없지만, 이들이 가진 의식과 사고방식에는 확연히 다른 양태가 드러난다.
앞서 잠시 거론한 것처럼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먼저 세대 작가들은 전반적으로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지난 세월 동안 ‘의식화된’ 사명감과 부담을 가진 마지막 세대의 작가들이라고 하고 싶다. 이들은 60년대 추상운동을 주도했던 작가들을 스승으로, 수묵운동이나 채색의 복권 등 ‘한국적인 것’의 가치를 찾던 80년대 화단 경향 속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작가로 출발했던 세대이다. 여전히 ‘전통의 현대화’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해도 좋을 환경과 시절에 화가로 성장한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먹으로 그리되 그 심현과 정신을 얻고자 했고, 색을 쓰되 전통의 맥을 잃지 않으려 했으며, 산수를 그리되 겸재의 정신을 이으면서도 당대의 풍경을 자신의 시각으로 그리고, 일상의 인물을 그려도 전신(傳神)의 현대적 이해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혹은 다른 입장에서라도 자신이 사용하는 재료에서 물질 너머의 또 다른 가치를 찾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는 분명 그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성과를 남겼다. 그 성과는 다음 세대 작가들에게 전통을 용하고 대응하는 방식에 자신들보다 월등히 넓은 여지를 만들어주었다는 의미도 가진다. 일부 정형화하거나 정체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한국화의 중견으로서 그간의 성과 위에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보이느냐 하는 것은 차후 한국화를 예측하게 하는 중요한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몰아치는 ‘젊은 작가 바람’이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주목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2000년대에 들어 활동을 본격화한 작가들에게 생겨난 가장 크고 결정적인 변화는, 이전 세대가 가졌던 전통에 대한 부담에 비해 매우 신속하게 그리고 꺼림 없이 그것을 벗어난 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들의‘꺼림 없음’의 이유의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이다. 경제성장기에 태어난 소위 신세대에 속하게 되는 이들은 색채와 이미지의 숲에서 성장했다. 자연은 도시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일부이거나 비일상적인 체험의 대상일 뿐, 도시와 문명이 만들어내는 냄새와 소음, 그리고 이미지가 보다 익숙한 풍경이다. 전통은 더욱 먼 거리로 멀어져 과거의 그림은 단지 역사적인 지식의 대상일 뿐이다.
이들에게 전통은 계승하거나 발전시켜야할 부담스러운 대상이라기보다는 독특하고 새로운 경험이자 만남이다.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를 사냥하듯 전통의 이미지들을 채집하고, UCC를 만들듯 그 이미지들을 변형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이렇게 새로운 감성으로 재구성된 그림들은 ‘팝’처럼 보이기도 하고 키치처럼 보이기도 하며, 그들의 감성을 반영하여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대사회의 폐부를 예리하게 기습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경쾌해 보이면서도 때로는 심각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이 이들 세대에 전적이거나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전 세대와 같은 시각에서 전통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찾아 그것을 변화된 세계에 사는 사람의 시각과 이해방식으로 연역해내려는 경우도 있고, 자신에게 효과적인 전통회화의 형식을 보다 확장되고 보편적인 이념을 담는 조형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전통에 대한 부담은 과거와 같지 않다. 어찌되었든 두 경우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전통과 관계를 맺고 있거나 의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전 세대와 같은 전통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전 세대가 그토록 찾아 보여주려 했던 전통의 맥이 얼마나 합리와 당위를 가진 것이었느냐 하는 문제를 남기고 있는 것에서 보듯 이들에게도 당위와 합리는 결국 이들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화는 조금씩 변모해왔고 지금 돌아보면 그 변모는 결코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화는 그렇게 앞으로도 변모해갈 것이지만 그 흐름이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는 쉽사리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화로 불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주목을 받는다면 그것은 한국화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작업을 하는 좋은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작업이라고 불리는 까닭의 한 가지는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사고와 감성, 그러니까 동시대 한국인의 그것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화의 최소한의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찾는 일은 각자의 몫이며 동시에 우리들의 몫이다. 그러한 점에서 전통은 우리를 강박하는 것이 아니라 비추어 선택하고 판단하는 기회를 줄 뿐이다. 전통이란 그것을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는 이미 전통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적어도 재료나 기법, 혹은 작가의 전공으로 한국화냐 아니냐를 따지는 시절은 지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아직도 ‘한국화’에 매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비로소 ‘한국화’를 시작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할 때일 것이다.


박정구(갤러리이안 큐레이터)

 

 

[ 권 기 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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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FLOWER 06 GRAVITY TF, 2006, Painting and Elastic Strings Install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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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FLOWER 06-2, 2006, Mixed Media on Korean Paper, 250x544cm

 

[ 김 정 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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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한지에 먹.채색, 108x7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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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한지에 먹, 106x75cm

 

[ 김 지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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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내외도(冊架內外圖) Still Life-Scape, 2007, 캔버스에 아크릴 Acrylic on Canvas, 113x90cm

 

김지혜,책가내외도(冊架內外圖),2007,113x80cm,acrylic on canvas-1.jpg

책가내외도(冊架內外圖) Still Life-Scape, 2007, 캔버스에 아크릴 Acrylic on Canvas, 113x80cm

 

[ 김 학 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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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난, 2006, 명륜동 와룡공원 정자 곁 나무둥치에 폐비닐 끈으로 난초 만들어 심�, 높이 약 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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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반흘림 인두체 연습(미당의 시-봄), 2005, 비닐종이에 납땜인두로 지져가며 글씨를 씀, 49x27cm

 

[ 민 재 영 ]

 

민재영,길 위에서-1.jpg

길 위에서 On a Brick Sidewalk, 2006, 한지에 수목, 136x250cm

 

민재영pauseafternoon-1.jpg

PAUSE-오후 PAUSE-In The Afternoon, 2005, 한지에 수묵.채색, 148.5x210.5cm

 

[ 박 병 춘 ]

 

박병춘, 풍경 위를 날다-2.jpg

풍경 위를 날다, 2007, 한지에 먹, 172x270cm

 

박병춘, 흐르는 풍경-1.jpg

흐르는 풍경, 2007, 한지에 먹, 164x135cm

 

[ 임  택 ]

 

임택-옮겨진산수유람기066-1.jpg

옮겨진 산수유람기 066 Moved Landscape-Journey 066, 2006, 디지털프린트.싸이텍, 67.56x84cm

 

임택-옮겨진산수유람기064-1.jpg

옮겨진 산수유람기 064 Moved Landscape-Journey 064, 2006, 디지털프린트.싸이텍, 84x56cm

 

[ 정 용 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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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ay Forest 1, 2006, 한지에 수묵, 200x140cm

 

정용국, 산수화-1.jpg

산수화, 2006, 한지에 수묵, 125x100cmx3

 

[ 정 재 호 ]

 

정재호,현대오락장-2.jpg

산수화, 2006, 한지에 수묵, 125x100cmx3

 

정재호,소공로빌딩-1.jpg

소공동빌딩, 2007, 한지에 채색, 162x260cm

 

[ 홍 지 윤 ]

 

홍지윤,음유낭만환상-원효로와청파동에서-1.jpg

음유낭만환상-원효로와 청파동에서, 2007, 수묵영상, 가변설치,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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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2007, 장지에 수묵, 210x1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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